윤석열 정부 1년을 경과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거대한 퇴행을 목도하고 있다. "바이든 날리면" 사태를 시작으로 국가지도자들의 거짓과 궤변은 일상화됐고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은 침묵하거나 동조하고 있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디지털뉴스리포트 2022'에 따르면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최하위 수준으로 조사됐지만, 주요 언론은 보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많은 전문가가 걱정하는 분야가 미일 중심의 극단적 외교정책과 69시간 노동시간 개편 등 반노동정책인 것에 반해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 즈음 MBN은 <뚝심의 리더십 "외교·노동 성과"…야당과 협치는 과제>(5월 10일 원중희 기자)라는 보도를 냈다. 앵커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한미동맹 강화, 3대 개혁 추진, 탈원전 폐기 등 다양한 성과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다른 분야는 차치하고, MBN이 외교와 함께 성과라고 평가한 노동분야를 살펴보자.
노동·연금·교육개혁을 현 정부 3대 개혁과제로 주창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1년간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과는 무엇이 있는가? 장관 경질로 이어진 만 5세 취학연령 하향 소동, 아직도 갈팡질팡하는 노동시간 개편 소동, 연금개혁안은 아예 제안도 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떤 개혁과제가 성과적으로 추진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노동개혁 아닌 '노동약자 희생' 몰두
다만 일부 언론이 지난해 겨울 화물연대 파업 국면에서 정부의 강경 대응과 이어진 건설노조 탄압, 광양 포스코 하청노조 농성장 강제진압 등 "노조 때리기"를 통한 지지율 반등이 성과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노동약자 보호와 좋은 일자리 창출 등 "노동개혁의 성과"가 아니라 정권 위기 국면에서 "정치적 희생양 찾기"에 성공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윤석열 정권이 강조하는 "노사법치주의 확립을 통한 노동약자 보호"가 성립하려면 최소한 "노사법치주의"가 무엇인지 이론적으로 규명돼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노동약자들이 어떻게 보호되는지가 현실에서 입증돼야 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5월 30일 매일노동뉴스와 취임 1주년 인터뷰에서 "노사법치가 모든 것의 출발점"이라면서 "노사 불문 누구에게나 법을 엄정하고 일관되게 적용"하는 게 노사법치주의라고 강조했다. 얼핏 들으면 공정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과연 현실에서 그러한가.
윤 대통령의 건폭 발언 등 노조 때리기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노동부는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를 개설하여 현장 불법과 탈법 등 비리를 신고받았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비공개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노조 비리' 노렸는데…부조리 신고 약 85%가 '사측 불법'>(5월 15일 곽주현 기자)이라고 보도했다. 1000여 건의 비리 접수 대부분은 노조 없는 노동약자들의 호소였다. 대표적인 근로기준법 위반 '공짜 야근' 포괄임금제에 대해 노동부는 단속은커녕 아직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노동약자에 침묵하는 노사법치주의
한편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주무 부처도 아닌 기획재정부가 나서서 노동부에 시행령 개정을 통한 법안 무력화를 주문하고, 대법원도 인정한 원청 사용자와 하청노조의 단체교섭을 위한 노조법 개정 '노란봉투법'은 입법도 되기 전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 법치주의가 근대 초기 군주제를 타파하고 인민을 대표하는 의회에서 제정된 법률만이 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이념, 즉 "법에 의한 지배"라면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시행령 정치"는 정확히 법치주의에 반한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 당시 정부가 발동한 '업무개시명령'이 국제노동기구(ILO) 기본 협약 87호(단결권) 29호(강제노동 금지)에 위배된다는 민주노총 제소에 ILO는 사무총장 명의로 한국 정부에 "즉각 개입"을 천명한 바 있다. 게다가 한겨레 <ILO "한국, 공공기관 지침 수립 때 노조 참여" 98호협약 비준 뒤 첫 권고> (6월 18일 김해정 기자)에 따르면, 이번 6월 총회에서는 한국 정부가 공공기관 지침 수립 때 노조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권고 결정을 내렸다.
이는 우리 정부가 2021년 기본 협약을 비준한 뒤 내려진 최초 결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비준한 국제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므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주장대로 '노사법치주의가 모든 것의 출발'이라면 공공부문의 사용자인 정부가 즉각 ILO 권고를 이행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노사법치주의의 가장 큰 맹점은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5인 미만 사업장과 기존 노동법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적용할 법조차 없는 노동자들에게 노사법치주의는 무정부 선언이나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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